文學의 오솔길/시창고

사과에 놀아나다 / 유안진

폴래폴래 2008. 10. 17. 21:23

 

 

사과에 놀아나다 / 유안진

 

 골목을 오르내리는 트럭에서 손나팔로 떠들어댄다

 아침마다 한 개 씩 먹으면 평생 병원을 모른다는 서양속담에다, 건강사과 미인사과 다이어 트 사과는, 학생이 먹어야할 총기사과이다가,  입시철에는 합격사과, 명절에는 오복사과이더니,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의 사랑사과라 한다

 

 이브는 사과 때문에

 뉴턴은 사과 덕분에

 금단(禁斷)의 과일에서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물증이 되어

 신학과 물리학의 고대사가 되었고

 외국인의 성씨(姓氏)에다 컴퓨터 상표도 되더니

 최근에는 우리나라 작가의 필명(筆名)까지 된 줄은 알았지만

 드디어 사랑까지 장악했으니 복숭아가 알면 억장이 무너지겠지

 

 귀가 길에 보니 트럭바닥에서도 ‘하트’ ‘사랑’ ‘ love' 등을 껴안고 사랑과 행복에 겨운 알사과 몇 개뿐

 윌리엄 텔의 과녁이던 아들 머리 위의 사과

 아프로디테의 말에 혹한 제우스가 그녀에게 건네주고 말았다*는 사과

 고대로부터 서양인에게는 비둘기처럼 양순하고 장미처럼 아름답고 가족처럼 소중하다던 과일의 총체인 사과

 사과바구니만 봐도 소(牛)는 진땀을 흘린다**는 사과

 어떤 과일이 감히 사과를 따라잡으랴, 한 개만으로도 바이블과 신화와 역사와 과학에 통달 한 총명한 미인이 되어, 八福까지 누리겠다고, 하하 웃으며 떨이로 샀다, 미안하다 복숭아야.

 

 *제우스에게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 중에서 여신을 뽑으라는 파리스의 명령에, 미인 아내를 얻게 해주겠다는 아프로디테에게 설득당했다는 그리스 신화 <파리스의 심판>에서

 **로마의 박물학자 폴리니우스의 말, 사과는 만물 중 가장 무거운 과일이라고 했다

 

시집 <거짓말로 참말하기> 2008년 천년의시작

 

 

 

  

 

               유안진 시인

 

 1965년~1967년 <현대문학> 3회 추천으로 등단. 첫 시집 <달하>를 비롯하여 <절망시편> <물로 바람으로> <날개옷> <그리스도, 옛 애인> <달빛에 젖은 가락> <영원한 느낌표> <월령가 쑥대머리>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 <누이> <봄비 한 주머니> <다보탑을 줍다> 등 신작시집과 미래사 시인선 <빈 가슴을 채울 한 마디 말>등 다수의 시선집. 중국어 번역시집 <춘우일대자>와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다시 우는 새> <땡삐 1,2,3,4> 등의 장편민속소설집. <지란지교를 꿈꾸며> <축복을 웃도는 것> <딸아딸아, 연지딸아> <도리도리 짝짜꿍> 등 다수의 산문집과 한국민속의 속요집 등 다수. 정지용문학상, 소월문학상 특별상, 월탄문학상, 한국펜문학상 수상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임동초등학교, 대전여중, 대전호수돈여고를 거쳐 서울사대 및 동 대학원,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Ph.D)에서 공부했다. 마산제일여중고, 대전호수돈여중고 교사, 서울대 이화여대 성신여대 강사, 한국교육개발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단국대, 서울대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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