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작은어머니 / 신달자

폴래폴래 2008. 10. 16. 20:31

 

작은어머니 신달자

 

아버지보다 스무 살이 아래인 그 여자

하얀 노인이 되어 임종을 맞아 누워 있네

아버지의 물이 저 여자의 어디까지 스미게 했을까

앙상한 뼈가 한 개 성냥개비 같다

돌아누운 그 여자 꽁지뼈가 솟은 못 같다

살가웠던 아버지의 더운 손을 저 뼈는 기억하고 있을까

엉덩이가 한 바지기만하다고

그걸 육자배기처럼 흔들어 아버지를 꼬신다고

어머니 독 묻은 욕을 소나기처럼 맞던

그 엉덩이살은 다 어디로 갔나

아들 두엇 낳았지만 호적엔 아직 처녀인 팔순의 뼈

저 여자 등짝에 붙은 이름은 늘 세 번째 첩이었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몸으로 쓸어 간 아랫도리나

어머니가 어머니의 손으로 뜯어 간 머리카락은 먼저 이승을 떠났는지

밋밋한 신생아 그것 같다

작은어머니!

누구나 그년이라고만 부르던 차가운 귀에

마지막 선물로 정확한 호칭을 불러 주었다

반시신이 부드럽게 펴지듯 눕는다

붉은 황토물이 여자의 생을 다 훑고 내 어깨에 와서 파도친다

형님요

그곳에 가서도 머리를 땅에 대고 어머니를 부를까

아버지의 입이 저승사자의 주머니에 들어 있겠다.

                                               

『열애』, 2007년 민음사

 

 

 

                                                              신달자 시인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문학박사) 「현대문학」에 박목월의 추천으로 등단하여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1998년 춘향문화대상을 수상하고 평택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 <봉헌문자>, <겨울축제>, <모순의 방>, <시간과의 동행>, <아버지의 빛> 등이 있고,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외에 산문집 <백치애인>,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 <이제야 너희를 만났다>< 오래 말하는 사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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