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파랗게 일렁이는 발목
김나영
지난여름 기습적 폭우가 한강 산책로를 짓밟고 지나갔다
낭창낭창한 꽃대를 자랑하던 꽃길이 곤죽이 되었다
구청 관리들이 그 자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을 때
매복하고 있던 야생이 먼저 숟가락을 꽂았다
강아지풀, 돌피, 개밀, 가는털비름, 털빕새귀리가
'인디언 사회에는 잡초라는 말이 없다'는 전언 앞세우고
낡음 낡음한 멜빵바지에 손가락 삐딱하니 찔러 넣고서
동네 건달처럼 짝다리를 짚고서 건들건들 헝글헝글
그 행색이 하나같이 시시하고 껄렁껄렁해 보이지만
트릭이다, 저들은 야생당(野生黨)이 키우는 비밀병기다
봐라, 강아풀 외엔 암호 같지 않은가, 저 이름들
화가 폭발하면 아스팔트도 씹어 먹는 녹색 괴물들이다
조명발 한번 받아본 적 없지만 저 분야의 베테랑들이다
끝났다 싶을 때 Coming Soon을 외치고 다시 돌아오는
어디에 던져놔도 누대를 거둬 먹이는 튼실한 흙수저들이다
꽃길 철거 소식에 뒤늦게 합류한 쇠무릎 어르신들
관절 주사까지 두 대씩 짱짱하게 맞고 왔다나
세계는 지금 복고풍의 음악이 유행한다나 뭐라나
다들 모인 기념으로 발바닥 댄스파티부터 열어보자는데
좌우지간 놀란 땅거죽에 다시 생피가 돌겠구먼 그래
1998년 예술세계 등단. 한양대 대학원 문학박사
시집<왼손의 쓸모><수작><나는 아무렇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