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밤하늘은 지저분한 거울이다
이원하
나무보다 가만히 서 있습니다
얼굴은 밤하늘입니다
혼자 주절거리면 되는 말들을
모은 두 손에 대고 말하는 중입니다
모은 두 손에는 빈자리가 없기에
농담도 원망도 끼어들지 못하는 중입니다
밤하늘이 아파해서 사람들은
깊은 잠을 잡니다
오늘따라 이목구비에 감정이 붐벼서
별들이 가던 길
가지 못하고 주저하며 내 곁을 지킵니다
부다페스트의 밤이 깊어가는 이야기를
낮은 이해하지 못하기에 들려주지 않습니다
들키지도 않습니다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곁을 오래 지켜왔지만
모은 두 손에는 다가올 기대라는 게 없고
지난날도 손뼉 치는 소리에 놀라
날아간 지 오래입니다
밤하늘은 내 가슴만 알고
그의 가슴은 몰라서 비명을 지르고 맙니다
내가 만든 요리를 보고도 비명 지른 적 있습니다
그 요리를 그가
먹었었습니다
이제는 하도 모아서 붙어버린 손이
허공에 잘못 손 딛다가 작은 불씨마저 꺼져버렸고,
이제는 내가 사랑하지 못하겠습니다
서정시학 2020 가을호
2018년<한국일보>로 등단. 시집<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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