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단 시간이 많았던 허수아비
이원하
죽은 나무를 구해다 마당에 심었어요
죽은 목숨이었지만 발전이 있어 보였거든요
죽은 나무는 절대
그 누구에게도, 하늘에게도
먼저 다가가지 않았어요
덕분에 나는 죽은 나무를 보며
매일 안심할 수 있었죠
대화를 위해 죽은 나무 위에
공을 매달았더니 생명이 됐어요
그걸 허수아비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내게도 친구가 생겨서
촛불을 켜고 축하하다가
그만
허수아비의 몸에 불이 붙어버렸어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허수아비는 그때 한마디했어요
이제야 말이 더듬더듬 나온다고
시집『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문학동네 2020년
이원하 :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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