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개의 표정 / 손진은

폴래폴래 2020. 1. 13. 16:25

 

 

            개의 표정

 

                         손진은

 

 두어 달 전 명절 끝날 산책길

 인적 뜸한 고향 신작로를 지나다 들었네

 

 점잖지 못하게 왜 그랬어?

 여동생을 오빠란 놈이 그렇게 하면 어째?

 아침 공기를 잔잔히 물들이는 어떤 중년의 음성

 

 그 오빠는 보이지 않고 하,

 누렁이 한 마리가 고갤 숙여

 그 말 고분고분 듣고 있는 곁엔

 누운 암탉 한 마리

 

 (아마 옛 버릇을 참지 못하고

 유순하던 개가 닭을 물었던 모양)

 

 머릿수건을 쓴

 그의 아내인 듯한 환한 여인은 또

 왜 암 말도 안 하고 아궁이에 장작불만 지피고 있었는지 몰라

 

 가축 두어 마리, 가금 대여섯

 키 낮은 채송화 분꽃, 해바라기와 사는 필부인

 그 사내 부부의 울타리 너머

 

 꿈결같이 들은 그날의 음성과

 실수 때문에

 가책 받은 얼굴로 고갤 숙이던

 그 착한 개의 표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가 다 죄인인 듯 마음이 저려온다네

 

 알아듣기는 했으려나, 그 말?

 메아리 소리가 곱게 울리던 그날 아침

 내가 진정 못 본 것은 또 무얼까?

 

 

 

 제3회 시와경계 문학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