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골목들 / 이하석

폴래폴래 2019. 7. 3. 16:14




                     골목들


                                        이하석


 뜯어내는 집이

 황혼 같네

 기둥과 대들보의 근육들이

 뒤틀렸네 추억처럼

 돌이킬 수 없어 보이네


 그러나 다 들어내진 않고


 교묘한 손질로 겨우

 정서의 높낮이를 다시 짜 맞추네


 그 옆으로는 시멘트로 깁스한 건물들,

 추억 파스로 땜질하고 덧댄 상처들의 건물들이

 제화점들, 성인텍들과

 서로 한 동네로 간섭하네


 전쟁 통에 밀려와 쓸리던

 화가와 시인들이 떠난 다방 자리도

 엇나간 풍경으로 기울다가

 리모텔링 되어 카페들로 거듭나네

 거기 무슨 색들과 말들이 더 남았을까

 나는 기웃거리며 뒤적이며

 무너진 추억의 퍼즐조각들을 줍게 될까?


 바랜 향촌동 골목들이여

 오래 속 끓이고 전전긍긍하던

 우리 추억의 실핏줄들이여

 황혼같이, 리모델링을 거듭하여 되새기는

 이상한 새것의 껍질들이여

 추억만 덕지덕지한 근대의 현대여


 숨바꼭질처럼,

 늙은 가수의 노래처럼,

 황혼같이,

 밤을 꼬박 새운 아침같이,

 여전히 숨어드는 생들을

 더욱 더 가지고

 내다보는 이들이여



 『시와반시』2019년 여름호




 -1948년 경북 고령 출생. 1971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투명한 속><김씨의 옆얼굴><우리 낯선 사람들><녹>

 <것들><연애 간(間)><천둥의 뿌리>등 김수영문학상,김달진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녹원문학상,김광협문학상,대구시문화상, 등 수상

 현재 대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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