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꼭지의 위상수학
- 박수련
촬영기사는 유방을 잡아당겨 차가운 압축판 위에 걸쳐놓았다. 수치심 따위는 통증에 깔려버렸다. 가슴으로 낳았다는 말, 배 아파 낳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담배꽁초처럼 짓이겨진 유방. 고무공이 터지지 않고 납작 해지기만 하면 위상수학으로는 같다. 소리 내시면 선명하게 안 찍힙니다 촬영기사의 말에 '아아' 소리가 터져 나오던 동그란 입을 '으으' 하며 찌그러뜨린다. 나는 언제나 말을 잘 듣는다.
스물 둘, 스물 셋 …… 털을 밀어서 맨숭맨숭한 돼지껍데기 저 오목한 땀구멍 하나하나가 눈이다. 빛을 잃은 눈이다. 나는 세는 걸 좋아한다. 헷갈려서 또 다시 처음부터 세다 멈춘다. 볼록단추처럼 예쁜 꼭지. 이게 그러니까 뽀얀 젖살이란 말이지. 꼭지를 가진 돼지의 위상은 갑자기 높아졌다. 불판에 올리자 찌릿찌릿 움츠러든다. 색종이처럼 조각조각 자른다. 쫀득쫀득 씹는다. 누군가 이빨 사이에서 꼭지가 돈다고 했다.
- 1969년 인천 출생.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동 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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