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신인상

201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폴래폴래 2017. 1. 3. 22:18



2017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갈라파고스

 

김태인

 

  어둠이 입술에 닿자 몸 안의 단어들이 수척해졌다 야윈 몸을 안고 섬 밖을 나갔다가 새벽이 오면 회귀하는 조류(潮流), 금이 간 말에서 아픈 단어가 태어나고 다 자란 말은 눈가 주름을 열고 떠나갔다

 

  남겨진 말의 귀를 열면 치어들이 지느러미를 털며 들이 닥쳤다.은어(隱語)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욕설이 귀를 깨문 몸 안에 손을 넣어 상한 심경을 꺼내 놓자 말수 줄은 언어의 생식기는 퇴화되어 갔다

 

  파도를 멀리 밀어낸 밤은 등대를 잡고 주저앉았다 부레를 떼어낸 언어는 외딴섬에 스스로를 격리시켰다 발굽에 물갈퀴가 생기고 단어에 부리가 자랐다 비늘이 깃털로 변해 조류(鳥類)로 진화했지만 텅 빈 죽지에 감춘 내재율을 버리지는 못하였다

 

  아주 오래된 하늘에 운율이 돌면 첫 문장은 가슴지느러미부터 따뜻해졌다 야윈 말들이 하나 둘 돌아온 섬은 언어의 기원에 종말을 고하고, 밤은 더 이상 섬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동쪽으로 흘러든 난류는 바다거북 등껍질에서 불가사의한 문자를 캐고 암염처럼 굳어버린 죽은 언어를 떼내었다

 

  남쪽 염전에서는 느린 운율과 음가들이 뿔 고동의 귓가에서 보송보송 말라갔다 새벽이 되어 방에 불을 끄면 되살아난 단어들이 몸 안에 환한 섬을 산란하는 것이었다

 

*갈라파고스 - 찰스 다윈이 발견한 섬 혹은 제도.

 

당선소감

언어 다듬던 섬에서 느낀 진화의 과정

 

  어느 날, 낯선 조류를 만나 외딴섬에 조난당한 기분이 들었다. 외로운 날을 견디려 몸속에 흐르는 언어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몸이 뒤틀리는 진화의 과정이었다. 그렇게 단어와 운율을 섞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았다. 사람들은 제각기 갈라파고스 섬을 하나씩 가지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섬을 나와 뭍에 오르기도 했지만 여전히 시라는 문장 앞에 서면 늘 부족하고 작아진다. 도반이 되어준 시산맥 식구들에게 늘 고맙다. 문정영, 이진욱, 이상윤, 전비담, 최연수 시인님 그리고 강원대 경영대학 동료들, 6명의 처제들, 친구들에게 감사드린다. 묵묵히 지켜봐준 아내와 딸, 아들에게 그리고 부족한 시를 선택해 주신 강원일보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김태인(43)

△전북 남원 生

 

심사평

“오랜 훈련으로 쌓은 차분한 문체·절제된 구성”

 

  올해 본심에는 `뭉크와 마돈나', `백합', `피노키오', `열린 문' 이상 네 편이 올랐다. `뭉크와 마돈나', `백합', `피노키오'는 각기 생동감 있는 인물들과 극적인 사건들을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열린 문'은 섬세하고 균형 잡힌 묘사를 통해 인물들의 심리와 그들의 일상적 삶을 설득력 있게 아우르는 기량을 보여주었다. 다만, 활달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결말부에서 의미적인 반전을 확보하여 궁극적으로 주제의식을 부각시키는 데에서는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차분한 문체에서 전혀 흐트러짐이 없고 또 작품의 구성에서도 절제력이 효과적으로 발휘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이 작가가 이미 오랜 훈련을 쌓았으며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전상국·최수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