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거미
- 배종환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담 넘어 염탐하듯 훔쳐볼 수밖에 없다
내 그림자를 밟은 초록 애거미는
첫 길 찾아 더디기만 하다
막힌 길을 잘도 빠져나가는 박새 때문에
허공에 생긴 구멍 엮어야 하는 나는
어설픈 목수.
순식간에 얽어 맨 허공에 매달려
굶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다
잇따라 사흘간 이슬만 적시고
걷히는 안개 사이로 쫓기는 무당벌레
말벌들 몇 왔다
바위 같은 기다림 끝에 묵직한 힘으로
굴러 말아 쥔 즐거운 식사 시간,
포만으로 허공이 출렁인다
죽은 체하며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한 생이 가면서 다른 생으로 이어지는
그런 기다림의 한계는 없다
허기진 하루가 끝없이 이어진 오늘
박새를 아슬하게 피한
안도의 모서리를 잡고 새우잠을 잔다
『시애』2016년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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