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 변두리 시

거미 / 배종환

폴래폴래 2016. 9. 12. 15:33




    사진:네이버포토



            거미


                               - 배종환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담 넘어 염탐하듯 훔쳐볼 수밖에 없다

  내 그림자를 밟은 초록 애거미는

  첫 길 찾아 더디기만 하다

  막힌 길을 잘도 빠져나가는 박새 때문에

  허공에 생긴 구멍 엮어야 하는 나는

  어설픈 목수.


  순식간에 얽어 맨 허공에 매달려

  굶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다

  잇따라 사흘간 이슬만 적시고

  걷히는 안개 사이로 쫓기는 무당벌레

  말벌들 몇 왔다

  바위 같은 기다림 끝에 묵직한 힘으로

  굴러 말아 쥔 즐거운 식사 시간,

  포만으로 허공이 출렁인다


  죽은 체하며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한 생이 가면서 다른 생으로 이어지는

  그런 기다림의 한계는 없다

  허기진 하루가 끝없이 이어진 오늘

  박새를 아슬하게 피한

  안도의 모서리를 잡고 새우잠을 잔다



 『시애』2016년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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