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신덕룡
손에 닿을 거리, 나뭇가지에서 사마귀가 매미와 씨름하고 있다. 커다란 눈알 번들거리며 갈퀴 같은 손으로 목을 조르고 뒷다리로 몸통을 껴안은 채 땀 흘리고 있다. 피가 역류하는 듯 매미가 부르르 몸을 떨다 잠잠해진 사이, 사마귀는 날카로운 이빨을 매미의 뇌수에 꽂는다.
잠깐이었다. 한여름 더위를 쓸어주는 울음소리와 오랜 세월 어둠 속에 있었을 매미의 전생이 떠올랐지만 손 내밀 수 없었다. 엄숙한 식욕이 모든 경전을 덮어버리는 시간이었다. 가지 끝에서 숨죽이며 지켜보는 고추잠자리의 눈망울 속으로 오랜 풍경들이 조용히 흘러갔다.
-경기도 양평 출생. 경희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85년<현대문학>에 평론,
2002년<시와시학>에 시로 등단. <시와사람>편집주간.
시집<소리의 감옥><아주 잠깐><아름다운 도둑>
김달진문학상, 발견문학상 수상. 광주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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