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신인상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폴래폴래 2014. 1. 2. 16:06

 

 

 

 

                         - 박세미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른다

 지나가던 개가 아무렇게나 싸놓은 똥처럼

 거기엔 무단 투기 금지라고 쓰여 있었는데

 나는 당당했지

 버려진 적 없으니까

 어느 날 거기 옆에 쪼그려 앉아 말했다

 누가 널 낳았니

 이름이 없어 좋겠다

 털이 있다는 건 위험한 일이지

 정체가 발각되는 것이니까

 집을 나오는 길

 두 발이 섞이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엔 얼굴과

 머리카락이 엉키고

 몸의 구분이 모호해질수록

 흩어져 있던 영혼의 조각들이 뭉쳐질수록

 나는 아무렇게나 던져진 쓰레기로 완성되었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른다

 아무도 내 정체를 모르고

 아무도 나를 분류하지 않는 곳

 껍질을 깨고 안으로 들어간다

 자, 이제 신앙에 대해 말할 수 있지

 바깥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

 한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것

 욕조 안으로 들어가면

 반쯤 잠기는 몸

 최초의 기분은 여기에 있지

 출렁인다

 다리 하나가 기어나간다

 

 

 

  - 1987년 서울 출생.

     강남대 건축공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