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점 / 김선우

폴래폴래 2013. 11. 28. 08:29

 

 

 

 

 사진:네이버포토

 

 

 

      

 

 

                                       - 김선우

 

 

 나는 지금 애인의 왼쪽 엉덩이에 나 있는

 푸른 점 하나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오래 전 내가 당신이었을 때

 이 푸른 반점은 내 왼쪽 가슴 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구과학 시간 칠판에 점 하나 쾅, 찍은 선생님이

 이것이 우리 은하계다! 하시던 날

 솟증이 솟아, 종일토록 꽃밭을 헤맨 기억이 납니다

 한 세계를 품고 이곳까지 건너온 고단한 당신,

 당신의 푸른 점 속으로 내가 걸어들어갑니다

 푸른 점 속에 까마득한 시간을 날아

 다시 하나의 푸른 별을 찾아낸

 내 심장이 만년설 위에 얹힙니다

 들어오세요 당신, 광대하고도 겨자씨 같은,

 당신이 내 속으로 들어올 때 나, 시시로 사나워지는 것은

 불 붙은 뼈가 물소리를 내며

 자꾸만 몸 밖으로 흘러나오려 하는 것은

 푸른 별 깍아지른 벼랑 끝에서

 당신과 내가 풀씨 하나로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비 2000년

 

 

 

 - 1970년 강원 강릉 출생. 강원대 국어교육과 졸업.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으로 등단.

  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등. 현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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