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선=수평선
- 함기석
비가 온다
전깃줄 같은 비가 뒤에서 와 목을 조른다
폐 없는 밤, 너는 썰물이 되어 떠나고
나는 방파제에 홀로 남아 독약 탄 음악을 마신다
술잔엔 한 방울 두 방울 비의 눈망울
죽어서 옆으로 누운 자의 눈엔
수직으로 서 있는 바다, 벼랑이 되어 서 있는 밤하늘
벼랑 끝 너의 울음처럼
수평의 거미줄에 걸려 파닥거리는 나비
흰 말들이 주검 마차를 끌고 수면을 달리고 있다
울음 우는 물새들
네가 동백으로 피었다 진 저 벼랑
거짓과 진실을 등과 배로 가진 범고래가 심해를 헤엄칠 때
한 어부가 어깨에 낮의 주검을 메고 걸어와
눈짓과 몸짓과 침묵으로 네 마지막 유언을 전한다
말해질 수 없는 말들의 저 흰 거품들
술잔엔 찰랑거리는 너의 얼굴
독주에 취해 저 흰 마차를 타면
오늘밤, 네가 먼저 도착한 하늘산장에 닿을 수 있을까
수평 비가 온다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깃줄 비가
뒤에서 와 목을 조른다
『발견』2013년 창간호. 여름호
- 1992년『작가세계』로 등단.
시집<오렌지 기하학><뽈랑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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