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수직선=수평선 / 함기석

폴래폴래 2013. 5. 24. 09:54

 

 

 

 

 

 

 

 

 

   수직선=수평선

 

 

                                                    - 함기석

 

 

 비가 온다

 전깃줄 같은 비가 뒤에서 와 목을 조른다

 폐 없는 밤, 너는 썰물이 되어 떠나고

 나는 방파제에 홀로 남아 독약 탄 음악을 마신다

 술잔엔 한 방울 두 방울 비의 눈망울

 

 죽어서 옆으로 누운 자의 눈엔

 수직으로 서 있는 바다, 벼랑이 되어 서 있는 밤하늘

 벼랑 끝 너의 울음처럼

 수평의 거미줄에 걸려 파닥거리는 나비

 

 흰 말들이 주검 마차를 끌고 수면을 달리고 있다

 울음 우는 물새들

 네가 동백으로 피었다 진 저 벼랑

 거짓과 진실을 등과 배로 가진 범고래가 심해를 헤엄칠 때

 

 한 어부가 어깨에 낮의 주검을 메고 걸어와

 눈짓과 몸짓과 침묵으로 네 마지막 유언을 전한다

 말해질 수 없는 말들의 저 흰 거품들

 술잔엔 찰랑거리는 너의 얼굴

 

 독주에 취해 저 흰 마차를 타면

 오늘밤, 네가 먼저 도착한 하늘산장에 닿을 수 있을까

 수평 비가 온다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깃줄 비가

 뒤에서 와 목을 조른다

 

 

 

 

 『발견』2013년 창간호. 여름호

 

 

 

  - 1992년『작가세계』로 등단.

   시집<오렌지 기하학><뽈랑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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