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찔레꽃 / 송찬호

폴래폴래 2013. 5. 2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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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 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 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 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수 년, 삶이 그렇게 징 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얬어라 벙어리처럼 하얬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에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시집『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지 2009

 

 

 

 

 -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경북대 독문학과 졸업.

   1987년<우리시대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0년 동안의 빈 의자><붉은 눈, 동백>

   동서문학상, 김수영문학상, 미당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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