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신인상

201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폴래폴래 2013. 1. 2. 11:54

 

 

 

 

   201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섬, 이유

 

                                       - 김유경

 

 

 이 섬에선 사람이 죽으면 바람에 묻는다

 그건 섬의 풍토병 같은 내력이어서 여자는

 바다로 떠나 돌아오지 않는 아비의 아이를

 박주가리 씨앗처럼 품은 채 바람에 묻혔다

 은행나무가 여자의 무덤이며 묘비명이었다

 남은 여자들이 제 주검을 보듯

 길게 울다 돌아갔다, 섬에서 여자가 죽으면

 살아서 뜨겁고 애달팠던 곳이 먼저 젖는다

 바람은 젖어 있는 것부터 시나브로 말린다

 소금에 간이 밴 깊이를 모두 말려

 눈물의 뿌리가 마른 우물처럼 바닥을 드러내면

 영혼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이 바람의 법이다

 하루 두 번 물마루 끝이 어물어물 붉어지고

 꼭 쥐고 있던 바람의 손아귀가 스르르 풀리면

 섬은 귀를 열고 듣는다, 먼 바다에서 들려오는

 돌아오지 않는 아비들의 빈 배가 웅웅 우는 소리를

 죽은 여자는 그 소리에 기대어 바람 몰래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 뭉텅뭉텅 사라지는 몸에서

 눈동자는 빛을 잃고, 머리칼은 제멋대로 자라나온다

 아이를 품은 움 같이 보드라운 궁륭, 그 곳에선

 바다 밑바닥에서만 나는 해초 내음이 나날이 짙어졌다

 마침내 바람이 여자를 온전히 데려갈 때

 죽은 여자는 아이를 은행나무 잎 속에 묻어두고

 떠난다, 홀로 누워 있었던 자리에

 노란 은행잎이 수북수북 쌓인다, 가을 한 철 내내

 바람의 장례가 제 열매 다 익도록 잎을 물들이지 않는

 은행나무의 사랑 같은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바람이 먼 바다 부표를 향해 치솟아 올라 길을 잡고

 여자의 푸른빛 안광은 그리운 바다를 향해

 따뜻하게 흘러간다, 아이는 그 바다 어디쯤에서

 돌아오지 못한 제 아비를 그대로 빼닮았지만

 섬도 바람도 그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 1985년 경남 창원 출생. 부산대 사범대 졸업.

    경남대 교육대학원 재학.

    현재 경남신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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