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제 22회 서정시학 신인상
국수 생각
- 한효정
지구 반대편에서 전화한 그녀는 국수가 먹고 싶다며
면을 사서 보내줄 수 있느냐 물었다
국수 생각이 간절해진 나는
무, 다시마, 마른 표고를 우려 국물을 만들고 국수를 삶는다
어릴 적 밤늦게 돌아온 엄마의 손엔 불어터진 국수 봉지가 들려 있었다
엄마가 비벼준 국수를 먹고 우리는
국수 가락처럼 엉켜 잠들었다 그날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도
시퍼런 칼을 든 남자에게 쫓기는 꿈도 꾸지 않았다
졸깃한 국수를 건져 올리다가 그녀를 떠올린다
이국 여자와 눈 맞아 집 나간 아들
그 아들을 찾아다니다 죽은 남편
이산(離散)의 내력을 가진 가계
창밖 문 닫힌 음반가게 앞에서 한 여자가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훌라후프를 돌리는 여자
앞으로 자동차들이 흙탕물을 튀기며 지나간다 흙물을 뒤집어 쓴 여자는
표정이 없다 여자가 훌라후프를 돌리는 동안
지구의 허리가 가늘어진다
도시 외곽으로 쫓겨나 연락이 끊긴 그녀의 어머니도
어느 허름한 집에서 새하얀 국수를 삶고 있을 것이다
『서정시학』2012년 겨울호
- 원광대 영어교육학과 졸업. 현재 도서출판 푸른향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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