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신인상

국수 생각 / 한효정

폴래폴래 2012. 12. 22. 13:20

 

 

 

 

 

 

 

 

 

           2012년 제 22회 서정시학 신인상

 

 

            국수 생각

 

                                                   - 한효정

 

 

 

 지구 반대편에서 전화한 그녀는 국수가 먹고 싶다며

 면을 사서 보내줄 수 있느냐 물었다

 

 국수 생각이 간절해진 나는

 무, 다시마, 마른 표고를 우려 국물을 만들고 국수를 삶는다

 

 어릴 적 밤늦게 돌아온 엄마의 손엔 불어터진 국수 봉지가 들려 있었다

 엄마가 비벼준 국수를 먹고 우리는

 국수 가락처럼 엉켜 잠들었다 그날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도

 시퍼런 칼을 든 남자에게 쫓기는 꿈도 꾸지 않았다

 

 졸깃한 국수를 건져 올리다가 그녀를 떠올린다

 이국 여자와 눈 맞아 집 나간 아들

 그 아들을 찾아다니다 죽은 남편

 이산(離散)의 내력을 가진 가계

 

 창밖 문 닫힌 음반가게 앞에서 한 여자가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훌라후프를 돌리는 여자

 앞으로 자동차들이 흙탕물을 튀기며 지나간다 흙물을 뒤집어 쓴 여자는

 표정이 없다 여자가 훌라후프를 돌리는 동안

 지구의 허리가 가늘어진다

 

 도시 외곽으로 쫓겨나 연락이 끊긴 그녀의 어머니도

 어느 허름한 집에서 새하얀 국수를 삶고 있을 것이다

 

 

 

『서정시학』2012년 겨울호

 

 

 

  - 원광대 영어교육학과 졸업. 현재 도서출판 푸른향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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