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산중음山中吟 / 백석

폴래폴래 2012. 10. 22. 11:12

 

 

 

 

 

 

 

 

 

 

 산중음山中吟

 

                                      백석白石(1912~1995)

 

 

 산숙山宿

 

 

 여인숙旅人宿이라도 국숫집이다

 모밀가루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워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木枕들을 베여보며

 이 산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木枕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골과 생업生業과 마음들을 생각해본다

 

 

 향악饗樂

 

 

 초생달이 귀신불같이 무서운 산골 거리에선

 처마 끝에 종이등의 불을 밝히고

 쩌락쩌락 떡을 친다

 감자떡이다

 이젠 캄캄한 밤과 개울물 소리만이다

 

 

 야반夜半

 

 

 토방에 승냥이 같은 강아지가 앉은 집

 부엌으론 무럭무럭 하이얀 김이 난다

 자정도 활씬 지났는데

 닭을 잡고 모밀국수를 누른다고 한다

 어늬 산 옆에선 캥캥 여우가 운다

 

 

 백화白樺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平安道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조광』4권 3호(1938. 3)

 정본 백석 시집 문학동네 2007년

 

 

 

 - 본명 백기행. 1912년 평북 정주 출생. 오산고보, 아오야마 학원(영문학) 졸업.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그 母와 아들> 당선

   1935년 조선일보에 시정주성」발표하며 등단

   1936년 시집<사슴>. 해방후 고향에 머물다 1995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