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이 손 좀 놔주세요
- 이근화
호박죽 포장을 들고 있었다
오토바이가 쓰러졌고 한참을 미끄러져 나갔다
쿵 소리가 먼저였던가
계산하던 아줌마가 영수증을 건네주다 놀라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아이고 어떡해 어떡하지 어떡하나
헬멧을 벗은 사람은 초로의 남자였다
오토바이 밑에 깔린 다리를 빼지 못했다
설탕 트럭을 피하려다가 속도를 줄이지 못한 걸까
트럭 운전수가 오토바이를 들어 올렸다
사람들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경찰서인지 병원인지 모를 곳으로 손가락을 놀렸다
호박죽은 식어가는데
죽집 아줌마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가야 하는데
혈압이 오르락내리락 엄마한테 가야 하는데
얼마나 다쳤는지 보험은 들어놨는지
걱정은 누구의 몫일까
영원히 일어서지 못하면 어떡해
설탕 트럭이 걱정을 우수 쏟아냈다
아줌마 제발 이 손 좀 놔주세요, 말하지 못했다
죽은 식어가는데 엄마가 오르락내리락 기다리는데
남자의 죽은 누가 포장해 갈지
빚쟁이 딸이 있으면 어떡해
달콤하지 않은 걱정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시집『차가운 잠』문지 2012년
- 1976년 서울 출생. 단국대 국문과, 고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칸트의 동물원><우리들의 진화>
윤동주문학상(젊은작가상 부문), 김준성문학상, 시와세계작품상 수상.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패랭이꽃 / 송찬호 (0) | 2012.08.18 |
---|---|
능소화 / 조용미 (0) | 2012.08.09 |
훈육 당하다 / 김은령 (0) | 2012.08.01 |
꽃 핀다, 꽃 피어난다 / 김경성 (0) | 2012.07.28 |
작약 / 김은령 (0) | 2012.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