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싱싱한 죽음 / 김현희

폴래폴래 2012. 6. 4. 09:07

 

 

 

 

 

 

 

 

 싱싱한 죽음

 

                                      - 김현희

 

 

 

 이곳은 그들의 適所, 계절은 늘 문밖에서 서성인다

 

 표적을 정하고 급소를 찌르는 찰나,

 그는 종료되었다

 꽃이 마지막 감정을 결정하기도 전

 물고 있던 말은 토막 나고 상황은 끝났다

 꽃의 생각 따윈 상관없다. 찰칵, 가윗날이 스쳐간 말은

 어차피 봉합되지 않는다

 잘리는 순간

 값이 매겨지는 목숨들, 단번에 끝내야 흠이 남지 않는다

 맑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비닐하우스 백합들

 오래 길들여진 무덤덤한 가위는

 짙은 꽃향기에도 취하지 않는다

 

 물로 살아난다고 믿는 손길이

 무더기로 꽃을 수습해 차에 싣는다

 세상에 이렇게 향기로운 주검이 또 있을까

 물에 발목을 담그고 다시 싱싱해지는 죽음들

 어디 한번, 황홀한 순간에 빠져보라고

 식탁에서 예식장에서 연인의 손안에서

 독한 시취屍臭를 퍼뜨린다

 

 한 무더기 화려한 웃음들, 가지런히 묶여 냉장고에 보관된다

 또 다시 부패를 늦추는 냉기에

 죽음은 잠시 지연된다

 

 아무도 백합의 정확한 사망시간을 모른다

 

 

 

 

 『문학나무』2012년 여름호

 

 

 

 

 - 2012년 평화신문 신춘문예 당선

   방통대 국문과 재학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