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포구의 방 / 김선우

폴래폴래 2012. 3. 20. 11:10

 

 

 

 

 

 

 

  포구의 방

 

                         - 김선우

 

 

 

 생리통의 밤이면

 지글지글 방바닥에 살 붙이고 싶더라

 침대에서 내려와 가까이 더,

 소라 냄새 나는 베개에 코 박고 있노라면

 

 푸른 연어처럼

 나는 어린 생것이 되어

 무릎 모으고 어깨 곱송그려

 앞가슴으론 말랑말랑한 거북알 하나쯤

 더 안을 만하게 둥글어져

 파도의 젖을 빨다가 내 젖을 물리다가

 

 포구에 떠오르는 해를 보았으면

 이제 막 생겨난 흰 엉덩이를 까부르며

 물장구를 쳤으면 모래성을 쌓았으면 싶더라

 

 미열이야 시시로 즐길 만하게 되었다고

 큰소리쳐놓고도 마음이 도질 때면

 비릿해진 살이 먼저 포구로 간다

 

 붓다도 레닌도 맨발의 내 어머니도

 아픈 날은 이렇게 온종일 방바닥과 놀다 가려니

 처녀 하나 뜨거워져 파도와 여물게 살 좀 섞어도

 흉되지 않으려니 싶어지더라

 

 

 

 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비 2000년

 

 

 

 

 - 1970년 강원 강릉 출생. 강원대 국어교육과 졸업

   1996년『창작과비평』겨울호에 <대관령 옛길>등 발표로 등단.

   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등 . 2004년 현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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