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어떤 흐린 가을비 / 류근

폴래폴래 2011. 12. 9. 10:59

 

 

 사진:네이버포토

 

 

 

 어떤 흐린 가을비

 

                                    - 류근

 

 

 

 이제 내 슬픔은 삼류다

 흐린 비 온다

 자주 먼 별을 찾아 떠돌던

 내 노래 세상에 없다

 한때 잘못 든 길이 있었을 뿐

 

 붉은 간판 아래로

 총천연색 씨네마 스코프 같은 추억이

 지나간다 이마를 가린 나무들

 몸매를 다 드러내며 젖고

 늙은 여인은 술병을 내려놓는다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슬픔의 자세를 보여주는

 나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숙이고 술을 마신다

 모든 슬픔은 함부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삼류가 된다

 

 가을이 너무 긴 나라

 여기선 꽃피는 일조차 고단하고

 저물어 눕고 싶을 땐 꼭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잎사귀를 허물면서 나는

 오래전에 죽은 별자리들의 안부를 생각한다

 

 흐린 비 온다

 젖은 불빛들이 길을 나선다

 아무도 듣지 않는 내 노래 술집 쪽으로 가고

 추억 쪽에서만 비로소 따뜻해지는

 내 슬픈 잎사귀 또 비에 젖는다

 

 

 

 시집『상처적 체질』문지 2010년

 

 

 

 경북 문경 출생, 충북 청주에서 성장. 중앙대 문창과 동 대학원 졸업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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