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어떤 흐린 가을비
- 류근
이제 내 슬픔은 삼류다
흐린 비 온다
자주 먼 별을 찾아 떠돌던
내 노래 세상에 없다
한때 잘못 든 길이 있었을 뿐
붉은 간판 아래로
총천연색 씨네마 스코프 같은 추억이
지나간다 이마를 가린 나무들
몸매를 다 드러내며 젖고
늙은 여인은 술병을 내려놓는다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슬픔의 자세를 보여주는
나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숙이고 술을 마신다
모든 슬픔은 함부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삼류가 된다
가을이 너무 긴 나라
여기선 꽃피는 일조차 고단하고
저물어 눕고 싶을 땐 꼭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잎사귀를 허물면서 나는
오래전에 죽은 별자리들의 안부를 생각한다
흐린 비 온다
젖은 불빛들이 길을 나선다
아무도 듣지 않는 내 노래 술집 쪽으로 가고
추억 쪽에서만 비로소 따뜻해지는
내 슬픈 잎사귀 또 비에 젖는다
시집『상처적 체질』문지 2010년
경북 문경 출생, 충북 청주에서 성장. 중앙대 문창과 동 대학원 졸업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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