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나의 소묘
- 홍문숙
사과는 다급하다
푸른 열망과 붉은 이별 사이에서
하루치의 태양을 어느 쪽으로 엎질러야 할지
쩔쩔 매고
사과는 줄다리기다
지난여름과 올가을이
푸른 기억과 붉은 망각 사이에서
시간의 샅바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려,
그러나 시월의 햇살은 좀처럼 다시 깨어나지 않았고
이튿날이 되어도 빠른 몰락만이 지나쳤을까
빠져나간 상념들이
현관문 앞에 벗어놓은 껍질처럼 말라간다
열망은 가으내 내일이라는 의문으로 남을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절망 끝에서 붉음의 내력을 건네줄 것이고
때론 아무런 성숙도 위로해 주지 않는
불면의 깊은 구석에서 외마디 체면들을 중얼거릴,
그리고 사과는 다급하다
방금 깨어난 또 한 무리의 햇살들이 내려왔고
나는 그 중 잘 익은 사과 하나를 따내어
윤기를 낸다
『시에』2011년 가을호
- 경기도 용인 출생. 201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눈물의 지름길은 양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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