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뫼비우스의 띠 / 신철규

폴래폴래 2011. 7. 15. 11:49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뫼비우스의 띠

 

                                   - 신철규

 

 

 

  면회실 간유리 너머 그가 있다 뺑소니였다 며칠 동안 감지 못한 머리가 번들거린다 그는 전화기선을 꼬았다가 풀고 다시 꼬았다 그와 나 사이를 쇠창살이 이중으로 가로막고 있다 누가 갇혀 있는 건지 모호했다 불투명한

 

  간유리가 서로를 비춘다 흐릿하게 겹쳐지는 얼굴들 그는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의 손목에 채워진 은빛 수갑, 간유리 가운데 연탄구멍 같은 원형의 통음구로 미세한 바람이 왔다 갔다 한다 형광등이 번득거리고 바깥에선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남동생은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말했고 여동생은 술 좀 그만 마시라며 울먹거렸다 푸석푸석한 파마머리를 매만지며 어머니는, 체념과 하소연이 섞인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제복 입은 경관이 우리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시간을 쟀다 수학의 정석을 풀다가 집어던졌다 할아버지의 기일, 제상 앞에서 술주정하던 그의 명치를 내질렀다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그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할머니가 나무뿌리 같은 손으로 내 등을 때렸다 오른팔이 떨어져 나가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그는 소화가 안 된다며 명치끝을 문지른다 그의 가슴에 박힌 연탄구멍에 손을 갖다 댄다 검은 구멍에서 널름거리는 푸른 꽃 나는 연탄재처럼 굳어가며 꼬인 전화선을 조금씩 풀어본다 쇠창살 같은 비가 손등에 내리꽂힌다

 

 

 

 

 『문학·선』2011년 여름호

 

 

 

 

 

  - 2011년『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