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감자꽃을 따다 / 손택수

폴래폴래 2011. 7. 4. 12:05

 

 

 

 

 

 감자꽃을 따다

 

                             - 손택수

 

 

 

 주말농장 밭고랑에 서 있던 형이 감자꽃을 딴다

 철문 형, 꽃 이쁜데 왜 따우

 내 묻는 말에

 이놈아 사람이나 감자나 너무 오래 꽃을 피우면

 알이 튼실하지 않은 법이여

 꽃에 신경 쓰느라 감자알이 굵어지지 않는단 말이다

 평소에 사형으로 모시는 형의 말씀을 따라 나도 감자꽃을 딴다

 꽃 핀 마음 뚜욱 뚝 끊어낸다

 꽃시절 한창일 나이에 일찍 어미가 된 내 어머니도

 눈 질끈 감고 아까운 꽃 다 꺾어냈으리라

 조카애가 생기고 나선 누이도

 화장품값 옷값을 말없이 줄여갔으리라

 토실토실 잘 익은 딸애를 등에 업고

 형이 감자꽃을 딴다

 딸이 생기고 나선 그 좋은 담배도 끊고

 술도 잘 마시질 않는다는 독종

 꽃 핀 마음 뚜욱 뚝 분지르며

 한 소쿠리 알감자 품에 안을 날들을 기다린다

 

 

 

 

 시집『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2010년

 

 

 

 

 -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부산에서 성장.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호랑이 발자국><목련 전차>

    신동엽 창작상, 이수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