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모자 / 송찬호

폴래폴래 2011. 5. 30. 15:59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모자

 

                      - 송찬호

 

 

 

 

 난 어떤 밀고자를 알고 있다

 저기 그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다

 벌써부터 그의 머리에서는 빵 굽는 냄새가 난다

 

 귓속으로 한 웅큼 동전이 쏟아진다

 자, 보세요 얼마나 잘 익었는지……

 그러나 난 아쉽게도 이 빵을 모자로 뒤집어야 한다

 

 난 모자 앞에서 늘 망설이는 편이다

 아름다운 여자 아름다운 집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처럼

 난 하나의 모자를 고른다, 그렇게

 한 권의 훌륭한 책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헤어져야 할 날이 올 것이다

 내 고단한 몸을 누일 때 그것이

 머리 위로 천천히 들어올려지겠지

 죽은 나비를 집어올리듯이

 

 저기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다

 보라,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내 인사는

 이것을 만지작거리며 반가워하는 것이다

 이 경의를, 빵 굽는 냄새 나는 이 모자를

 

 

 

 

  『시와 세계』2011년 봄호

 

 

 

 

  -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경북대 독문학과 졸업.

     1987년<우리 시대의 문학> 등단.

     시집<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0년 동안의 빈 의자>

     <붉은 눈, 동백><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상 / 김윤이  (0) 2011.06.01
모퉁이 / 황학주  (0) 2011.05.31
각설탕 / 유현숙  (0) 2011.05.30
정해진 이별 / 황학주  (0) 2011.05.27
모란 송사送辭 / 유종인  (0) 2011.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