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너라는 꽃을 지우기 위해 / 배영옥

폴래폴래 2011. 3. 1. 12:23

 

 

 

 

 

 너라는 꽃을 지우기 위해

 

                                           - 배영옥

 

 

 

 언젠가 목구멍 저 깊은 곳에 숨어있는 성대를

 내시경 화면으로 본 적이 있다

 어두컴컴한 목구멍 안쪽에서 소리가 되어 나오려고

 파르르 떨고 있는 성대는

 아주 작고 연약한 꽃잎이었다

 

 내 손으로

 눈 닫아걸고 귀 닫아걸고 입 닫아걸고 십년이 지났지만

 너는 아직 내 안에 있었다

 질문 없는 대답처럼

 너는 꽃이 되어 있었다

 

 너라는 꽃을 지우기 위해

 나는 얼마나 긴 침묵과 싸워야했던가

 스스로 씹어 삼킨 가시는

 또 얼마나 깊이 폐부를 찔러댔던가

 

 고통의 축제*는 끝이 없고

 나는 얼마나 더 붉은 입술을 깨물어야하는지

 또 얼마나 오래 숨죽여야하는지

 

 목구멍에 핀 저 꽃에게 묻는다

 

 

 *정현종의『고통의 祝祭』에서 따옴.

 

 

 

 시집『뭇별이 총총』실천문학 2011

 

 

 

 - 대구 출생. 계명대 대학원 문창과 졸업

    1999년『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詩心의 향기 > 시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 내장탕 / 유미애  (0) 2011.03.02
토요일 밤 스타벅스에서 / 김박은경  (0) 2011.03.01
허공의 장례 / 함기석  (0) 2011.02.28
한 방울 / 김선우  (0) 2011.02.26
느린 이별 / 이사라  (0) 2011.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