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동백 /박남준

폴래폴래 2011. 2. 9. 02:19

 

 

 

 

 

 동백

 

                      - 박남준

 

 

 

 동백의 숲까지 나는 간다

 저 붉은 것,

 피를 토하며 매달리는 간절한 고통 같은 것

 어떤 격렬한 열망이 이 겨울 꽃을 피우게 하는지

 내 욕망의 그늘에도 동백이 숨어 피고 지고 있겠지

 

 지는 것들이 길 위에 누워 꽃길을 만드는구나

 동백의 숲에서는 꽃의 무상함도 다만 일별해야 했으나

 견딜 수 없는 몸의 무게로 무너져내린 동백을 보는 일이란

 곤두박질한 주검의 속살을 기웃거리는 일 같아서

 두 눈은 동백 너머 푸른 바다 더듬이를 곤두세운다

 옛날은 이렇게도 끈질기구나

 동백을 보러 갔던 건

 거기 내 안의 동백을 부리고자 했던 것

 

 동백의 숲을 되짚어 나오네

 부리지 못한 동백꽃송이 내 진창의 바닥에 떨어지네

 무수한 칼날을 들어 동백의 가지를 치고 또 친들

 나를 아예 죽고 죽이지 않은들

 저 동백 다시 피어나지 않겠는가

 동백의 숲을 되짚어 나오네

 부리지 못한 동백꽃송이 내 진창의 바닥에 피어나네

 

 

 

 

 시집『적막』창비 2005년

 

 

 

 

 - 1957년 전남 법성포 출생. 1984년<시인>으로 등단

    시집<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풀여치의 노래>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