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오래된 집 / 최서림

폴래폴래 2011. 1. 25. 22:10

 

 

 사진:네이버포토

 

 

 

 오래된 집

 

                          - 최서림

 

 

 

 내 몸은 이미 녹슬고 덜커덕거리고 있어

 

 흘려보내야 할 것들, 더 이상 붙잡지 말아야할 것들을

 살비늘 속에 다 떨쳐버리고 싶어

 

 모르스 부호처럼 내 귓속에 접속되지 않는 젊은 노래들,

 둔탁한 나를 플라타너스 밑동 마냥 쓸쓸하게 하고

 한때 즐겨 흥얼거리던 가사마저 문득

 오래 전 가버린 여인의 S라인 몸매같이 낯설어지고

 

 어깨 너머로 너무 많은 날들이 지나가버렸어

 

 분침과 시침이 어긋나도 부지런히 돌아가는 시계처럼

 헐떡이며 간신히 여기까지 흘러왔어

 

 가끔씩 스텝이 엉겨도 그대로 넘어가는 탱고같이

 단순한 인생이 그리워

 더 이상 붙잡으면 추해질 것들을

 탁한 세월 속에다 놓아버리고 싶어

 

 밥물 끓어 넘치듯 부글거리는 욕망들,

 빈 도마를 정신없이 두들겨대는 내 안의 식칼 소리들,

 어느덧 앙금으로 가라앉아

 남을 것만 남아있기를

 

 내 몸은 너무 메마르게 서걱거리고 있어

 

 

 

 

 시집『물금』세계사 2010

 

 

 

 

 자서

 

 가시 같은 말

 

 잠들지 못하는 말에 이끌려

 

 여기까지 걸어 왔다

 

 내 안의 푸른 노새가 말의 이파리를 뜯어먹고 있다

 

 

  2010년 초겨울, 최서림

 

 

 

 

 

   - 본명 최승호. 1956년 경북 청도 출생.

      서울대 국문과 동 대학원 문학박사.

      1993년『 현대시』등단

      시집<이서국으로 들어가다><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구멍> 등

      서울과학기술대 문창과 교수

      제1회 클릭학술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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