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아카시아 꽃 / 마종기

폴래폴래 2010. 8. 22. 11:05

 

 

 

 

 

 

  아카시아 꽃

 

                             - 마종기

 

 

 

 1. 1950년

 

 아, 저 먹이!

 저 맛있는 꽃!

 굶주림에 지친 나를 살려준 꽃,

 헛구역질의 꽃향기도 기억난다.

 아, 저 황홀한 먹이!

 한국 전쟁의 마르고 긴 낮은

 몇 달씩 지치고 배가 고팠다.

 시야가 노랗던 초등학교 6학년,

 뙤약볕이 어지럽고 무섭게 더워

 방공호 땅굴 속의 흙벽을 긁으며

 작은 진흙덩어리 몇 개씩 삼키고

 흙 묻은 입에 아카시아 꽃송이들

 몇 송이채 씹어 먹고 또 먹던

 그 여름, 저 흰 향기의 밥.

 

 2. 2009년

 

 5월 말에 만난 무더기의 황홀은

 진한 몸 냄새 흔들며 눈 감는 꽃,

 충청북도 제천, 진천, 옥천을 돌며

 밤낮으로 어지럽게 달리면서 핀다.

 온 몸에 감기는 탄성의 감촉으로

 나도 오랫만에 깊은 잠을 잤다.

 요염하고 화사한 저 지천의 먹이!

 아직도 어디쯤에 남아있는 내 허기여,

 미안하다, 가지고 싶었다.

 내 소원은 이 계절만이라도 함께 있는 것,

 웃으면서 배고픈 나를 숨겨주는 꽃.

 

 

 

 

 

  『문학동네』2010년 봄호

 

 

 

 

 

  - 1939년 도쿄 출생. 1959년『현대문학』등단.

     시집<조용한 개선><두번째 겨울><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 뿐이랴><하늘의 맨살>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