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
- 마종기
1. 1950년
아, 저 먹이!
저 맛있는 꽃!
굶주림에 지친 나를 살려준 꽃,
헛구역질의 꽃향기도 기억난다.
아, 저 황홀한 먹이!
한국 전쟁의 마르고 긴 낮은
몇 달씩 지치고 배가 고팠다.
시야가 노랗던 초등학교 6학년,
뙤약볕이 어지럽고 무섭게 더워
방공호 땅굴 속의 흙벽을 긁으며
작은 진흙덩어리 몇 개씩 삼키고
흙 묻은 입에 아카시아 꽃송이들
몇 송이채 씹어 먹고 또 먹던
그 여름, 저 흰 향기의 밥.
2. 2009년
5월 말에 만난 무더기의 황홀은
진한 몸 냄새 흔들며 눈 감는 꽃,
충청북도 제천, 진천, 옥천을 돌며
밤낮으로 어지럽게 달리면서 핀다.
온 몸에 감기는 탄성의 감촉으로
나도 오랫만에 깊은 잠을 잤다.
요염하고 화사한 저 지천의 먹이!
아직도 어디쯤에 남아있는 내 허기여,
미안하다, 가지고 싶었다.
내 소원은 이 계절만이라도 함께 있는 것,
웃으면서 배고픈 나를 숨겨주는 꽃.
『문학동네』2010년 봄호
- 1939년 도쿄 출생. 1959년『현대문학』등단.
시집<조용한 개선><두번째 겨울><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 뿐이랴><하늘의 맨살>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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