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피는 꽃
- 박미산
피고 지는 것이 지겨워 무거운 침묵을 가지에 걸어 두었다 태어나서 처음
손으로 만져보는 빗방울, 어제 어깨 위에 떨어져 내렸던 눈송이, 나는 한없
이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는 새들의 흔적을 지웠다 미래를 예감할 필요가 없
었다 뭉게구름 속에 완벽하게 나 자신을 은닉했다
아침과 저녁 생년월일이 없는 나를 살게 한 건 무관심이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도 돌아갔다 구름 한쪽이 목 잘려 떨어지는데도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견고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구름이 잘려나간 한 방향을 고집스럽
게 바라보았다 기울어가는 빛이 보였다 나는 이미 늙은 아이였다
시집『루낭의 지도』서정시학 2008
-인천 출생. 고대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2006년『유심』신인상, 2008년《세계일보》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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