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길에 부는 바람 / 이승하

폴래폴래 2010. 7. 9. 10:25

 

 

 

 

 

  길에 부는 바람

        ─혜초의 길 37

 

                                        - 이승하  

 

 

 

 길은 언제나 길로 이어지고

 마을은 언제나 마을로 이어진다

 내 언젠가는 너로 이어지고

 우리는 끝내 너희로 이어지리

 다들 그렇게 살아온 나날

 

 바람아 더 따뜻하게 불어라

 씨앗들이 봄을 예감하고 있을 때

 봉오리들이 봄비를 예감하고 있을 때

 생명은 또 다른 생명으로 수렴되고

 자기 닮은 생명을 길에 부려놓기도 하지

 

 저마다 지 새끼가 있어

 아픔도 이불처럼 포근해지고

 슬픔도 입술처럼 감미로웠으나

 바람은 때때로 저돌적이 된다

 바람 잘 날 없던 상처의 나날

 

 네가 죽더라도

 나 세끼 밥 찾아서 잘 먹을 것이다

 내 죽는 날 너는 무얼 할 것이냐

 생명은 언제나 생명으로 이어지고

 바람은 언제나 바람으로 이어진다

 

 

 

 

  시집『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혜초의 길  서정시학2010년

 

 

 

 

  시인

 

 아직도 못 배운 운전

 길 걸어가며 시구를 떠올리곤 했다.

 지하세계로 난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버스 손잡이를 잡고 바깥 풍경을 보면서

 떠올린 것은 이상하게도 신라의 구법승 혜초였다.

 그는 오만 리 험한 길을 도보로 갔는데

 나는 편하게 차를 타고 다니고 있다.

 실크로드 여행 이후 십 년 동안

 혜초가 걸었던 길을 생각하며 쓴

 일종의 연작시, 이제 완성하였다.

 세상의 모든 길에게 이 시집 바치고 싶다.

 

              2010년 봄에

                이 승 하

 

 

 

 

  -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사랑의 탐구><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폭력과 광기의 나날><박수를 찾아서><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시선집<젊은 별에게><공포와 전율의 나날>소설집<길 위에서의 죽음>

      중앙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