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부는 바람
─혜초의 길 37
- 이승하
길은 언제나 길로 이어지고
마을은 언제나 마을로 이어진다
내 언젠가는 너로 이어지고
우리는 끝내 너희로 이어지리
다들 그렇게 살아온 나날
바람아 더 따뜻하게 불어라
씨앗들이 봄을 예감하고 있을 때
봉오리들이 봄비를 예감하고 있을 때
생명은 또 다른 생명으로 수렴되고
자기 닮은 생명을 길에 부려놓기도 하지
저마다 지 새끼가 있어
아픔도 이불처럼 포근해지고
슬픔도 입술처럼 감미로웠으나
바람은 때때로 저돌적이 된다
바람 잘 날 없던 상처의 나날
네가 죽더라도
나 세끼 밥 찾아서 잘 먹을 것이다
내 죽는 날 너는 무얼 할 것이냐
생명은 언제나 생명으로 이어지고
바람은 언제나 바람으로 이어진다
시집『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혜초의 길 서정시학2010년
시인의 말
아직도 못 배운 운전
길 걸어가며 시구를 떠올리곤 했다.
지하세계로 난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버스 손잡이를 잡고 바깥 풍경을 보면서
떠올린 것은 이상하게도 신라의 구법승 혜초였다.
그는 오만 리 험한 길을 도보로 갔는데
나는 편하게 차를 타고 다니고 있다.
실크로드 여행 이후 십 년 동안
혜초가 걸었던 길을 생각하며 쓴
일종의 연작시, 이제 완성하였다.
세상의 모든 길에게 이 시집 바치고 싶다.
2010년 봄에
이 승 하
-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사랑의 탐구><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폭력과 광기의 나날><박수를 찾아서><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시선집<젊은 별에게><공포와 전율의 나날>소설집<길 위에서의 죽음>
중앙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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