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김밥 마는 여자 장만호

폴래폴래 2010. 5. 12. 11:26

 

 

 

 

 

 

  김밥 마는 여자

 

                               - 장만호  

 

 

 

 눈 내리는 수유중앙시장

 가게마다 흰 김이 피어오르고

 붉은 죽을 마시다 보았지, 김밥을 말다가

 문득 김발에 묻은 밥알을 떼어 먹는 여자

 끈적이는 생애의 죽간(竹簡)과

 그 위에 찍힌 밥알 같은 방점들을,

 저렇게 작은 뗏목이 싣고 나르는 어떤 가계(家系)를

 한 모금 죽을 마시며 보았지

 시큼한 단무지며 시금치며

 색색의 야채들을 밥알의 끈기로 붙들어놓고

 붓꽃 같은 손이 열릴 때마다 필사되는

 검은 두루마리, 이제는 하나가 된

 그 단단한 밥알 속에서 피어오르는

 삼색의 꽃들을

 

 

 

 

  시집『무서운 속도』랜덤하우스 2008

 

 

 

 

 

  - 1970년 전북 무주 출생. 고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2001년『세계일보』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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