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다시올문학>신인상(2010년봄호)
변검
- 김설진
무대 위 배우 수십 번 얼굴을 벗고 있다
손짓 한 번에 관우가 창을 휘두르고
도리질 한 번에 육척 장비가 칼을 내리친다
빙그르 도는 한 바퀴에 나타나는 주연 배우들
맨 밑에 조연처럼 숨어 있는 그의 얼굴
카멜레온처럼 얼굴을 바꾸는 배우
얼굴을 감싼 노란 가루가 그의 얼굴을 감추어버렸다
무기가 없던 시절 짐승을 쫓기 위해 만들어진 변검
이삼 십년 얼굴을 잃어가는 고통의 시간을 지나
화려한 옷을 입고 무대 위에 서있다
가면을 따라 바뀌는 그의 삶
마술에 가까운 배우의 연기에 탄성만 질러대는 관객들
금색 먹색 은색을 사용하는 취검
입김으로 분가루를 불어 얼굴을 바꾼다
숨을 멈추는 고통의 시간
한 손으로 관객의 시선을 돌리고 다른 손으로
전광석화처럼 비단가면을 떼어내는 차검
가면이 뜯겨져 나가며 접착제가 할퀸 얼굴에서 피가 흐른다
찰나에 변하는 가면들의 감정들
충성을 맹세한 유비가 튀어 나오면
간사한 모사꾼이 뒤를 따른다
공성계의 운기 변검
사마의를 물리친 제갈공명이 합죽선을 흔들고 있다
겹겹이 얼굴을 가린 가면들이 그의 손끝에서 살고 진다
막이 내려지면
가면들이 떨어져 나가고 또 다른 가면이 그의 얼굴을 덮는다
수선전문
- 김설진
1층 수선전문, 2층 헬스클럽, 3층 성형외과
짧은 바지는 천을 덧대고 앞가슴은 봉긋 질 좋은 안감을 넣을까? 1층의 바쁜 손놀림에 초크가 바쁘게 선을 그어대고 망설임 없는 가위질이 시작된다
몸을 수선 중인 2층, 무거운 여자들 출렁출렁 러닝머신 위에서 땀을 쏟아낸다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 길을 헉헉거리며 달린다 수선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3층으로 올라간다
3층 성형외과 뱃살 두어 켜 덜어내고 늘어진 팔뚝은 살짝 당겨 탄력을 준다 보톡스의 마법에 걸린 중년 여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잘려져 나간 곳에서 떨어져 내리는 올 풀린 희고 붉은 조각들 한 땀 한 땀 수놓아진 입 다문 지퍼자국 잘 뒤집어 감쪽같이 숨겨둔다 열에 들뜬 다리미로 쭉쭉 밀어 구김살 하나 없는 얼굴이 말갛게 웃고 있다
1층 수선전문
2층 완벽한 체형을 위한 강사 항시 대기
3층 일요일도 진료 합니다
잘 고쳐진 저 여자
잡지 표지 모델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꾼다
그외 '호암터널엔 봄이 세 개다' 작품 있음.
- 김현희, 전남 광주 출생. 배재대학교 영문과 졸업
어둠떨이 불꽃
- 최창순
지하 기계실로 내려간다
귀뚜라미 보일러 스위치를 누르자
떨이요 떨이
해질녘 동대문 시장에서 들었던 소리처럼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불꽃을 피운다
고압가스 자격증을 따려면 화염 치솟는 전쟁터에서
실낱같은 목숨을 지켜내듯
밤이 낮 되도록 불을 지피는 기계통과 씨름해야 한다
파랗게 연소되는 식구들의 목숨을 지키듯
불꽃과 싸워야 한다
바람이 불면 꺼질듯 휘어지다가
다시 살아나는 불꽃이 어둠을 수놓는다
보일러 불꽃을 살리는 지하 기계실
내 팔뚝에도 툭 툭 불꽃이 뛴다
금낭화
- 최창순
돌밭에서 땅을 일구어 먹던
며느리주머니
강원도에 살고 있네
맏아들 유학 보내 발품 팔아 하숙비주고
품앗이한 돈은 쓸개 빠진 둘째 놈 사친회비로 주었네
지아비에게 혼쭐나면서도
줄줄이 매달린 아홉 자식 지극정성 섬겨
시집 장가보내고 나니,
붉은 입술 곱던 며느리주머니
어느새 속이 텅 비었네
아흔 살 할머니 되어 자식에게 받은 이자
손자손녀 서른두 명,
한 줄기에서 뻗어나온 한 몸이라고
눈에 넣고 안고 업고
늙은 며느리주머니
복 터진 할미라며 자랑하고 다니네
* 그외 '뿔' 작품이 있음.
- 서울산업대학교 시창작반 수료
영등포 문화원 민요판소리 연합회장
현 양평 햇빛농장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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