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신인상

제12회 <詩로 여는 세상> 신인상 당선작

폴래폴래 2010. 3. 18. 14:25

 

 

제12회 <詩로 여는 세상>신인상 당선작

 

 

불안에 관한 보고서

 

                                    - 정운희

 

 

  1

  눈앞에서 마지막 열차를 놓쳤다.

  순간 지상의 모든 길들이 휘발된다. 칼에 베인 듯한 이 서늘한 메타포는 뭘까, 공포에 가까운 긴장으로 열리는 몸, 방전된 가랑이 속 번개가 내리친다. 수억만 개의 유성이 휘몰아친다. 나는 열리면서 동시에 해체된다 낯선 광장, 주머니 칼 접히듯 펴지지 않는 몸, 살을 발라낸 뼈의 철로

 

  2

  꿈속에도 여러 갈래의 길이 꼬이거나 솟아 있다

  구름은 구름을 올라타고 흔들어대고 휘저어댄다 한 발자국도 집을 향해 진행하지 못한다. 어둠은 두께를 더하며 조여 온다. 다닥다닥 공격해오는 불가사리 그 붉은 별자리 나의 깊은 곳을 빨아댄다 번개가 가차 없이 내리친다. 나는 굴속을 후벼 파느라 손톱이 잘려나가고

 

  불안은 오르기즘의 창고다. 번개는 불안을 공격한다 불안의 절정에서 난 오르가즘을 느낀다. 번개 맞은 동굴이 아득해진다. 불안은 불안을 지켜내는 중독성 강한 毒이면서 눈물이다. 불안의 힘이 나를 키운다. 이 보고서는 대필도 복사본은 더더욱 아닌 리얼리티다

 

  3

  나는 너를 주워진 시간 안에 풀어야 한다.

  수억만 개의 별자리를 풀어야 하고 수억만 번 하늘과 땅이 열리고 닫힌다. 공격적인 종소리는 불안을 부추긴다. 나는 끝내 너를 풀지 못한 채 점점 높이 가벼워진다 불안에서 꽃이 피는 기이한 세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번개는 종소리를 관통하고 종소리는 나의 깊은 곳에서 소리친다. 하늘이여! 바다여! 살쾡이여!

 

 

 

 - 충북 충주 출생.

 

 

 

 

 무궁화 인쇄소

 

                             - 이은화

 

 

 

 무궁화호가 숨을 덜컹거리며 달린다

 어디로 갔다 돌아오는 걸까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물끄러미 창밖을 쳐다보는 여자

 마지막 노래가 끝나면 다시 재생되는

 영원히 떠나지 못해

 유리 한 장에 염소처럼 말뚝 묶인 얼굴

 울음과 경적의 두 뿔, 레일

 마음이 유리에 뜬다

 이렇게 뜨거운 인쇄소가 어디 있겠는가

 유리창 하나에 현상되는 인생

 칸마다 같은 얼굴만 찍히는

 이런 원고지 칸이 어디 있겠는가

 어둠과 밝음이 경계를 넘나드는 화면

 숨을 덜컹거리며 내 마음을 찍어대는

 유리 인쇄기 한 장

 

 굴러가는 바퀴

 불꽃 튀기며 순간이 용접되는 길

 독자가 오직 자신뿐인 책을 계속 찍어대는

 

 

 

 - 1969년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 졸업.

    2009년 김유정기억하기 시부문 대상 수상.

 

 

 

  * 심사위원:유안진, 이명수, 홍일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