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
라면을 한 개 더 삶다
- 맹문재
아이들이 밥맛 없다고 라면을 끓여달라기에
세 명분으로 두 개를 삶다가
얼른 한 개를 더 넣는다
라면 국물에 뜨는 기름이 몸에 좋지 않다고
개수를 줄이며 살아왔는데
나를 지탱하는 힘으로 삼던 라면 맛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4명의 자식들 점심으로 8개의 라면을 삶은 어머니
양이 많아야 한 입이라도 더 먹을 수 있기에
물을 많이 넣고 퍼지도록 끓였다
나는 전태일 어머니의 그 라면을 생각하며 젊은 날을 버텼다
자취방에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라면에 찬밥 말아 먹는 대접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라면을 잘 먹지 않는다
감기에 걸리면 보름을 넘기기 일쑤고
욕할 때조차 큰 소리를 내지 못하는 몸, 위하려고 한다지만
라면을 먹지 않을 정도로 겁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버리려고 했던 라면 맛
한식날 심은 나무처럼 살려야 한다고 아이들 앞에서
나는 오기를 부린 것이다
- 시집『책이 무거운 이유』창비 2005
- 1963년 충북 단양 출생. 고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91년『문학정신』신인문학상 등단.
시집<먼 길을 움직인다><물고기에게 배우다>
안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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