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라면을 한 개 더 삶다 / 맹문재

폴래폴래 2010. 1. 25. 13:10

 

 

    사진;네이버포토

 

 

 

 

   라면을 한 개 더 삶다

 

                                     - 맹문재

 

 

 

 아이들이 밥맛 없다고 라면을 끓여달라기에

 세 명분으로 두 개를 삶다가

 얼른 한 개를 더 넣는다

 라면 국물에 뜨는 기름이 몸에 좋지 않다고

 개수를 줄이며 살아왔는데

 

 나를 지탱하는 힘으로 삼던 라면 맛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4명의 자식들 점심으로 8개의 라면을 삶은 어머니

 양이 많아야 한 입이라도 더 먹을 수 있기에

 물을 많이 넣고 퍼지도록 끓였다

 

 나는 전태일 어머니의 그 라면을 생각하며 젊은 날을 버텼다

 자취방에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라면에 찬밥 말아 먹는 대접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라면을 잘 먹지 않는다

 감기에 걸리면 보름을 넘기기 일쑤고

 욕할 때조차 큰 소리를 내지 못하는 몸, 위하려고 한다지만

 라면을 먹지 않을 정도로 겁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버리려고 했던 라면 맛

 한식날 심은 나무처럼 살려야 한다고 아이들 앞에서

 나는 오기를 부린 것이다

 

 

 

  - 시집『책이 무거운 이유』창비 2005

 

 

 

  - 1963년 충북 단양 출생. 고대 국문과 동 대학원 졸업

     1991년『문학정신』신인문학상 등단.

     시집<먼 길을 움직인다><물고기에게 배우다>

     안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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