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책 / 김수영

폴래폴래 2010. 1. 1. 23:43

 

 

 

 

 

 

 

       책

 

                          - 김수영 

 

 

 

 책을 한 권 가지고 있었지요. 까만 표지에 손바닥만한 작은

 책이지요. 첫 장을 넘기면 눈이 내리곤 하지요.

 

 바람도 잠든 숲속, 잠든 현사시나무들 투명한 물관만 깨어 있

 었지요. 가장 크고 우람한 현사시나무 밑에 당신은 멈추었지요.

 당신의 나무둥치에 등을 기대자 비로소 눈이 내리기 시작했

 지요. 어디에든 닿기만 하면 녹아버리는 눈. 그때쯤 해서 꽃눈

 이 깨어났겠지요.

 

 때늦은 봄눈이었구요, 눈은 밤마다 빛나는 구슬이었지요.

 

 나는 한때 사랑의 시들이 씌어진 책을 가지고 있었지요.

 모서리가 나들나들 닳은 옛날 책이지요. 읽는 순간 봄눈처럼

 녹아버리는. 아름다운 구절들로 가득 차 있는 아주 작은 책이었

 지요.

 

 

         <세상의 기척들 다시 쓰다>시힘 25주년 기념 동인지.북인 2009

 

 

 

         - 1967년 경남 마산 출생.

           199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오랜 밤 이야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