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목포항 / 김선우

폴래폴래 2009. 11. 11. 20:36

 

 

 

 

 

 

 

         목포항

 

                            - 김선우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막배 떠난 항구의 스산함 때문이 아니라

 대기실에 쪼그려앉은 노파의 복숭아 때문에

 

 짓무르고 다친 것들이 안쓰러워

 애써 빛깔 좋은 과육을 고르다가

 내 몸속의 상처 덧날 때가 있다

 

 먼 곳을 돌아온 열매여,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어서

 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 이토록 비릿한가

 

 손가락을 더듬어 심장을 찾는다

 가끔씩 검불처럼 떨어지는 살비늘

 고동소리 들렸던가 사랑했던가

 가슴팍에 수십개 바늘을 꽂고도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는 제웅처럼

 피 한방울 후련하게 흘려보지 못하고

 휘적휘적 가고 또 오는 목포항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게 되기를

 

 떠나간 막배가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 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비2000

 

 

 

         - 1970년 강원 강릉 출생.

            1996년 창비 겨울호『대관령 옛길』등 10편 발표로 등단.

            시집<도화 아래 잠들다><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2004년 현대문학상 수상. ' 시힘'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