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고바우집 소금구이
- 김선우
이상하지? 신촌 고바우집 연탄 불판 위에서 생고깃덩어리 익어갈 때, 두꺼운 비곗살로 불판을 쓱쓱 닦아가며 남루한 얼굴 몇이 맛나게 소금구이 먹고 있을 때
엉치뼈나 갈비뼈 안짝 어디쯤서 내밀하게 움직이던 살들과 육체의 건너편에 밀접했던 비곗살, 살아서는 절대로 서로의 살을 만져줄 수 없던 것들이, 참 이상하지?
새끼의 등짝을 핥아주고 암내도 풍기곤 했을 처형된 욕망의 덩어리들이 자기 살로 자기 살을 닦아주면서, 그리웠어 어쩌구 하는 것처럼 다정스레 냄새를 풍기더라니깐
훤한 알전구 주방의 큰 도마에선 붉게 상기된 아줌마들이 뭉청뭉청 돼지 한마리 썰고 있었는데 내 살이 내 살을 닦아 줄 그때처럼 신명나게 생고기를 썰고 있었는데
축제의 무희처럼 상추를 활짝 펼쳐들고 방울, 단검, 고기 몇점, 맛나게 싸서 삼키는 중에 이상하지? 산다는 게 갑자기 단순하게 경쾌해지고 화르륵 밝아지는, 안 보이던 나의 얼굴이 그때 갑자기 보이는 것이었거든.
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비 2000
- 1970년 강릉 출생.
1996년 『창작과비평』겨울호에 대관령 옛길등 10편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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