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 이기성
오래된 거울이었는데, 이상하지
나는 구름이 된다
언니는 낡은 연애소설을 읽고
나는 벌써 뚱뚱하게 부푼 거품이 되었어
더운 오줌이 바지를 다 적실 것처럼 흘러
따뜻한 언니라고 부르며 언니의 커다란 젖가슴을 흘러내리면서
작은 애들처럼 따듯하게 구운 감자를 먹고
함께 매를 먹고 차가운 물에 천천히 잠길 때
얼굴이 검은 언니는 거울을 보듯 나를 들여다보고
수초의 녹색 손가락을 벌려 목을 휘감는다
허벅지에 젖은 속옷을 둘둘 감고 언니는
좌판에 쭈그리고 앉은 가난뱅이처럼
검은 연애소설을 읽고 또 읽는다
누런 비린내를 담요처럼 덮어쓴 언니
하염없이 졸고 있는 최초의 언니
십년 후에 문득 다정한 언니라고 부르며
젖은 머리카락처럼 검게 흘러내리면
발이 커다랗고 입술이 비틀린 언니는
말끔하고 하얘질 것 같다
모르는 언니의 입김이 내 눈에서 얼어붙고
오래된 납의 거울 속 사라진 애들이 발견될 것 같다
『문학수첩』2009년 가을호
- 1966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同대학원 졸업.
1998년《문학과사회》등단.
시집<불쑥 내민 손>문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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