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쌍가락지 / 김명인

폴래폴래 2009. 9. 11. 08:36

 

 

 

                     사진:네이버포토갤러리

 

 

 

         쌍가락지

 

                               - 김명인 

 

 

 

 그가 거두는 약속일까, 서쪽까지 걸어간 해가

 어느새 테두리를 이울며 지고 있다

 가운데를 뻥 뚫어 주홍빛 살결로 채운

 가락지, 한 짝을 어느 하늘에서 잃어버렸을까

 빛살을 펼쳐들고 수평선 아래로 잠겨든다

 

 한 번도 디딘 적이 없는 저기 허구렁에

 그가 뿌려놓은 또 다른 내일이 있다는 것일까

 벙글어진 하늘의 목화밭

 목화 따러 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는데

 붉은 병을 던진 듯 활활활 송이송이 불타고 있다

 

 나는, 솟아나고 가라앉으며 12억 광년 먼 회로를 따라

 약속에 이끌려서 여기까지 왔다

 억만년 전에 찢겨버린 흰 구름

 푸른 물결로 떠밀리면서

 이 모래밭에 착근하려던 한 알갱이 모래,

 모든 소멸은 일몰로 간다, 다시 내장되거나

 캄캄하게 태어나는 빛!

 

 헤어지지 말아요!

 해의 누이 달이 속삭이는 소리

 약속을, 동쪽 끝에 걸어두었는데 어느새

 혈육으로도 깁지 못하는 저녁이 왔다

 이 절망은 테두리뿐인 가락지처럼 속이 환하다!

 

 

 

           『시인세계』2009년 가을호

 

 

 

 

         - 1946년 경북 울진 출생. 고대 국문과 졸업

            1973년《중앙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파문>문지 2005.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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