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여울 / 문태준

폴래폴래 2009. 8. 24. 09:01

 

 

 

 

 

 

 

 

           여울

 

                              - 문태준 

 

 

 

  축축한 돌멩이를 만나 에돌아 에돌아나가는,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어라

  문득 멈추어 돌이끼로 핀, 물이 그리워하는 소리를 들어라

  사랑하는 이여, 처음도 끝도 없는 이 여울이 나는 좋아라

  혀가 굳고 말이 엇갈리는 지독한 사랑이 좋아라

  손아귀에 움켜쥐면 소리조차 없는, 메마른 물의 얼굴이어도 좋아라

 

 

 

           시집『맨발』창비 2004

 

 

 

           ■ 시인의 말

 

     당신의 발 아래 그곳에

     바람 한점 없어

     꽃그늘에

     제 몸의 그림자 속에

     져내린 붉은 꽃잎들

     당신의 발 아래 그곳에

     두려운 그곳에

     그렇게 소복하게 저물었다 가는 것들아!

 

  네 해 동안 꽃이랑 풀, 낯빛이 어두운 사람, 별과 여울, 미루나무를 만났다. 습지와 같은 그늘을 드리운, 낱낱이 오롯한 존재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대화가 이번 시집을 낳았다. 입아아입(入我我入)이다. 저것이 나한테 들어 있고, 내가 저것 속에 들어 있다. 나 아닌 것, 그러면서 동시에 나인 것들을 잘 섬기며 살아야겠다.

  한권의 시집을 묶으며 다시 읽어보니, 모시조개가 뱉어 놓은 모래알 같은 시들이다. 모래알 같은 시들이어서 손으로 쓸어모으기만 해도 입 안이 깔깔해진다.

  다만, 시 쓰는 일이 오래오래(久久) 해야 할 것임을 믿는다.

  가을이 가까워지니 눈동자가 맑아진다.

 

                                                                                      2004년 8월

                                                                                             문태준

 

 

 

            -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고대 국문과 졸업.

               1994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處暑외 당선.

               '시힘'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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