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대하여
- 정일근
영원한 것은 아름답다고 믿은 적이 있었다
영원히 살기를 바랐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삶이 나에게 가르쳤다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아름다운 것은 순간이었다
언제나 지나가면 사라지는 헛것이었다
하늘 깊이 반짝이는 새벽별이나
붉게 타오르는 저녁놀
풀잎 끝에 매달린 맑은 이슬 같은
내가 진정 아름다워하는 것들은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오래 기다렸던 첫눈도
눈이 피우는 나무의 눈꽃들도
결국 녹아버리고 마는 흔적이었다
사람의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첫사랑 첫키스 같은 가슴 떨림도
흑백사진으로 남는 추억이었다
그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한 약속도
헛것이 되고 말았다
내가 영원히 사랑한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한 것은 헛것이다
백 년 동안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는
백 년 사진 속에 남은 젊은 내 모습도 헛것이다
영원히!, 를 외치며 높이 쳐든
세상의 술잔도 술이 깨면 헛것이다
무릇 아름다운 것은 변한다
변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은현리 들판도 겨울 봄 여름 가을이 있어 아름답다
우리 집 마당의 겨울나무도
잎 피우고 꽃 피울 봄을 기다리고 있어 아름답다
지금 시드는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 시들지 않고 영원하다면
나는 너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변하는 것들에 깃든다
생로병사가 있어 사람도 아름다울 수 있으니
변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살아온 시간만큼 내가 늙어가는 것도 아름다움이려니
나의 아름다움이여
삶이 나에게 가르쳤다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은 헛것일 뿐이라고
변하는 것은 아름답다고
시집『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문학사상2003
- 1958년 경남 진해 출생. 경남대 국어교육과 졸업
1984년《실천문학》1985년《한국일보》신춘문예 등단.
시집<경주남산><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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