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폐계 / 김용택

폴래폴래 2009. 8. 2. 08:55

 

 

 

                                       사진:네이버포토

 

 

 

          폐계

 

                              - 김용택 

 

 

 

 강추위가 와도 강물은 얼지 않았다

 강추위가 와도 강물이 얼지 않은 것은 강물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라며

 비 쌍피로 비 띠를 때리며 큰집 형님은 이러면 손핸디, 하며 패를 거두어간다.

 벌써 칠피다.

 뒷산 밤나무에는 익지 않은 밤송이들이 떨어지지 않고 웅숭그린 새들처럼 산그늘 속에 매달려 겨울을 지내고 있다.

 광을 판 이웃 동네 내 동갑내기는 바지춤을 추키며

 이런 니기미 좆도 겁나게 추어부네 니미럴, 어치고 되얐서 시방, 입에다가 욕을 달고

 으으으 몸서리를 치며 패 없는 자리에 앉는다.

 잔돈이 한쪽으로 몰리고

 한쪽이 죽은 열이레 달이 떠오른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그날 아침 강물이 꽝꽝 얼었었다.

 어찌나 추웠던지 얼음장 금가는 소리가

 아침까지 산을 울렸고 강기슭이 밤새워 운 어머니 입술처럼 하얗게 부르텄었다.

 제사상을 차리고, 영정 속의 잘생긴 아버지는 약간 불만스러운 얼굴이지만 여전히 젊다.

 형님이 술을 따른다. 술잔을 올려놓고 아버지를 생각한다.

 나 죽으면 국수를 제사상에 차려놓거라. 아버지의 별명은 국수 일곱 그릇이었다.

 잔칫집에 가서 국수를 일곱 그릇이나 잡수셨다고 했다.

 설이 가까운 아버님의 기일에 동생들은 오지 않는다.

 군산 사는 작은누이, 그 아들 둘, 나, 아내, 딸, 그리고 큰집 형님만 절을 한다.

 달이 밝다. 허물어진 담과 빈집 지붕 위에 달빛이 누추하다.

 오랫동안 나는 강에 가지 않았다.

 큰집에서는 결정적일 때 또 누가 싼 모양이다. 어어! 고함소리가 지붕 위로 솟는다.

 강추위가 귀때기를 베어가게 추위도 강물은 얼지 않는다. 아침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돌아눕고 돌아눕는다.

 외풍으로 코끝이 차다.

 달이 지려면 멀었다. 아버님은 헛기침을 하시며

 뒷산을 오르시다가, 달빛 아래 우리집을 한번 돌아다 본다.

 빈 집터 닭장에서

 목이 쇤

 폐계(廢鷄)가 운다.

 

 

                           시집『수양버들』창비 2009

 

 

 

                ■ 시인의 말

 

 봄이다.

 한 가지로 너무 오래 살았다.

 모두 낡았다

 사랑도, 시도, 눈물도, 정치도, 경제도, 철학도,

 종교는 통제불능이다.

 산은 말문을 닫고,

 물가에 서서

 내 손이 암울하다.

 뒤뜰에 핀

 매화 한 송이가 무심치 않다.

 무심할 리가 없다. 어찌 무심하리.

 꽃 보듯 나를 보라!

 무궁무진 무질서의 아들인 시여!

 그런데,

 봄이다.

 

  

                                2009년 3월 초

                 풀잎 돋는 강변에 엎드려

                               김용택 삼가 씀.

              

 

           - 1948년 전북 임실 출생.

              1982년 21인 신작시집으로 등단.

              덕치초등학교에서 40여년간 교사생활.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