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가족 박물관 / 이사라

폴래폴래 2009. 7. 17. 14:50

 

 

 

 

                             사진:네이버포토

 

 

 

 

           가족 박물관

 

                                           - 이사라 

 

 

 

 한 개의 꽃이 활짝 피었다가 또 지는 중이다

 방 안에서

 마루 끝에서

 건널목 저편에서

 그때마다 꽃 그림자가 피는 밤

 

 오래도록 꽃이 피었다가 지면

 가족은 가족사진이 되고

 액자 유리에 납작해진 가족은

 드디어 조화가 된다

 

 만 년 동안 살아 있다고 전해지는 밤에도

 눈이 오고

 봄이 오고

 또 눈이 오고

 한 사람이 눈길을 걷다가

 눈이 덮어버린 길이 궁금해지고

 궁금하지 않던 그 길이 궁금해지고

 

 삽 하나 들고

 부드러운 것은 부드럽게 파헤치고

 날카로운 것은 날카롭게 피헤치면

 박물관 하나가 나타난다

 관 속에 조용히 누워 있는데도

 가족은

 그가 살아 있다고 믿는 밤

 

 신화를 쪼고 있는 부리 단단한 새도

 잠들지 못하는 밤

 흰 눈과 흰 뼈로 만나서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는 꽃밭이 아름답다

 

 

 

                    시집『가족박물관』문학동네 2008

 

 

 

 

                         - 1953년 서울 출생. 이대 국문과 同대학원 졸업.

                            1981년『문학사상』등단.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서울산업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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