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도리사 석탑 / 김경성

폴래폴래 2008. 12. 24. 22:50

 

 

 

                                               그림:김성로 제공:프라하님

 

 

                  도리사 석탑

 

                                                      김경성

 

   빛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빛보다 더 깊은 그림자를 제 안에 담고 있다

   햇빛 싸안고 그 빛 부셔대며

   몸의 무늬를 펴 가는 오래된 탑

   조금씩 벌어진 틈으로 바람 새어들어 갔다

   그때 어떤 말들이 함께 쓸려 들어갔는지

   바람이 거세게 불 때마다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었다

   용마루 타고 미끄러져 내린 시간 처마 끝에 닿아

   빛깔 무너진 단청에 울컥 걸렸을 때

   천육백 년 된 사원보다 더 오래된,

   나무의 결 그대로 드러난 저 주심포의 말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엉기고 기대어 제 몸에 스며든 그림자까지 모두

   굽이쳐 흐르는

   물결무늬 나뭇결 하나하나가

   바람으로 익어간다는 것을 아는지

   탑 그림자는 사원으로 들어가 있고 나무 그림자는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탑을 가만히 감싸 안고 있었다

   아무것도 저 홀로인 것은 없다

   기대고 기대어

   스미고 스미어 익어가는 것이다

   내 몸이 탑 그림자 속으로 들어갈 때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고 바람은 더 거세게 불었다

   지는 해에 물든 황금빛 이파리

   물고기 떼처럼 기왓장 틈으로 스며들었는데

   내 그림자까지

   탑 그림자에 섞여 출렁거리며

   모든 것이 한 물결이 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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