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와 사귀다 / 김명인
어떤 벌레가 어머니의 회로를 갉아먹었는지
깜박깜박 기억이 헛발을 디딜 때가 잦다
어머니는 지금 망각이라는 골목에 접어드신 것이니
반지수를 이어놓아도
엉뚱한 곳에서 살다 오신 듯 한생이 뒤죽박죽이다
생사의 길 예 있어도 분간할 수 없으니
문득 얕은 꿈에서 깨어난 오늘밤
내 잠도 더는 깊어지지 않겠다
이리저리 뒤척거릴수록 의식만 또렷해져
나밖에 없는 방안에서 무언가 '툭' 떨어지고
누군가 건넌방의 문을 여닫는다. 환청인가?
그러고 보면 너 어느새 부재와도 사귈 나이,
……그날 아무리 밀어도 밀려나지 않던 윈도우의 안개
셋이 동승한 차 안에서 한 여자의 흐느낌 섞인 노래 들었으니
2008. 미당문학상수상작품집
김명인 시인
194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을 수상.
시집 「동두천」「머나먼 곳 스와니」「물 건너는 사람」「푸른 강아지와 놀다」「바닷가의 장례」「길의 침묵」「바다의 아코디언」「파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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