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의 오솔길/시창고

대추나무와 사귀다 / 김명인

폴래폴래 2008. 10. 22. 21:16

 

대추나무와 사귀다 / 김명인

 

어떤 벌레가 어머니의 회로를 갉아먹었는지

깜박깜박 기억이 헛발을 디딜 때가 잦다

어머니는 지금 망각이라는 골목에 접어드신 것이니

반지수를 이어놓아도

엉뚱한 곳에서 살다 오신 듯 한생이 뒤죽박죽이다

생사의 길 예 있어도 분간할 수 없으니

문득 얕은 꿈에서 깨어난 오늘밤

내 잠도 더는 깊어지지 않겠다

이리저리 뒤척거릴수록 의식만 또렷해져

나밖에 없는 방안에서 무언가  '툭' 떨어지고

누군가 건넌방의 문을 여닫는다. 환청인가?

그러고 보면 너 어느새 부재와도 사귈 나이,

 

……그날 아무리 밀어도 밀려나지 않던 윈도우의 안개

셋이 동승한 차 안에서 한 여자의 흐느낌 섞인 노래 들었으니

 

 

2008. 미당문학상수상작품집

 

 

      

             김명인 시인

 

194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을 수상.

시집 「동두천」「머나먼 곳 스와니」「물 건너는 사람」「푸른 강아지와 놀다」「바닷가의 장례」「길의 침묵」「바다의 아코디언」「파문」 등

 

'文學의 오솔길 > 시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 라디오 / 이이체  (0) 2008.10.24
모과처럼 / 윤여홍  (0) 2008.10.24
공기는 내 사랑 / 정진규  (0) 2008.10.22
거짓말로 참말하기 / 유안진  (0) 2008.10.21
절 1 / 이영광  (0) 2008.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