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래폴래 2020. 10. 18. 11:55

능소화

 

                     윤제림

 

 

 지금은 종로 복판까지 와서 눈 크게 뜨고 앉아 있는

 전봉준 저 사람, 다른 얼굴은 처음부터 없었다

 

 어느 시절이든 누구 하나는

 저런 얼굴로 살고

 죽어도

 저런 눈으로 죽을 일이다

 

 목을 쳐서 허공에 내걸어도

 하늘을 찢는 눈빛은

 열사흘,

 급기야 비 내리는 황톳길로

 저승사자도 슬금슬금 무릎걸음으로 와서는

 끝내 절하며 모셔갈 얼굴,

 

 이놈! 소리치며

 가마에 오르는

 눈.

 

 

 계간 <시와 사상> 2020 가을호

 

 

 1960년 충북 제천 출생. 1987년 <문예중앙> 등단. 시집<삼천리호 자전거>

 <미미의 집> <황천반점> <사랑을 놓치다> <그는 걸어서 온다> <새의 얼굴>

 <편지에는 그냥 잘 지낸다고 쓴다> 등. 서울예대 광고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