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글러브 중독자

폴래폴래 2020. 5. 25. 09:45

 

 

    글러브 중독자

 

 

                            마경덕

 

 

 최동원 선동열을 벽에 걸었다

 무쇠팔, 무등산 폭격기를 바라보며 커브와 슬라이더에 집중했다

 구종을 고르며 삼진 아웃을 노리던 그 사내

 방어율이 낮은 청춘은 갔다

 테드볼에 도루 같은 생이었다

 

 글러브를 싣고 달려온 남자

 지난봄 타율이 높은 길목에 터를 잡았지만

 타석에서 물러난 사람이 휘두른 방망이에 중상을 입었다

 수십 년 바닥에서 굴렀지만 구질은 여전히 직구였다

 어디에도 마운드는 없었다

 

 홈런만을 요구하는 세상에게 주먹감자를 날려볼까

 야유를 퍼붓는 관중석으로 강속구를 던져볼까

 글러브를 움켜쥐고 부르르 떠는

 그는 글러브 중독자

 

 뭉개진 글러브를 찢어먹고

 까맣게 변한 글러브도 먹는다

 

 글러브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

 

 야구장 앞

 트럭에 쌓인 바나나, 속수무책 까뭇까뭇 익어간다

 

 

 시집<그녀의 외로움은 B형> 상상인 2020년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신발論><글러브 중독자><사물의 입>

 제2회 북한강문학상 대상 수상

 현) 롯데, AK, 강남문화원 시 창작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