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의 향기/시詩(필사)
장미 축제 / 정채원
폴래폴래
2020. 3. 7. 11:19
장미 축제
정채원
변심한 연인을 찌른 당신의 칼날에
장미가 문득 피어났다
칼날을 적시며
장미가 무더기로 피어났다
꽃잎이 닿는 순간
살도 뼈도 녹아내린다
무쇠 덩이도 토막이 난다
쓰러뜨린 얼룩말을 뜯어먹는
사자의 붉은 입처럼
장미는 점점 더 싱싱해진다
백 년이 지나도 시들지 않겠다는 듯
부드러운 혀로 도려낸 심장들이
담장에 매달려 너덜거리는 6월
갓 피어난 연인들은 뺨을 비비고
서로의 가시를 핥고
밤새 바람을 가르던 칼날 위로
변심한 장미가 빼곡하게 피어났다
어느새 칼날을 다 삼켜버린
핏빛 장미가 무더기로 피어났다
시집『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문학동네 2019년
1996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나의 키로 건너는 강>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일교차로 만든 집>